가야 하는데, 자야 하는데
W.비앙카
유난히 잠이 오지 않더라니, 그것은 오실 임을 기다리라는 몸의 신호였구나.
지민은 침대에 누워 이불을 끌어당겼다. 머리칼이 베개 위로 흐뜨러졌다. 은은한 무드등의 주황빛이 방 안을 얕게 비춘다. 시곗바늘이 12시를 가리키고 있었기에 지민은 잠을 청했다. 야속하게도 눈동자는 잠귀신이 찾아오지 않은 듯 말똥말똥 뜨여 있었다. 밖에서 맴맴, 하는 작은 매미소리가 고요한 밤공기 사이로 스며들었다. 지민은 자리에서 뒤척였다. 부스럭거리며 천이 지민의 사이에서 구겨졌다.
"지금 안 자면 내일 학교에서 조는데..."
그리고 찾아온 선배한테 인사 못할 수도 있고... 지민은 눈을 꼭 감고 잠시동안 어디론가 흘러간 잠을 찾았다. 잠아, 잠아 와라. 물론 노력은 허사였다는 듯 트이는 눈꺼풀이 밉다. 침대 옆 창문에 어둠이 짙게 깔렸는데, 내 잠은 어디를 헤매기에 날 찾지 않는 걸까. 지민은 가만히 눈을 깜빡였다. 자야 하는데.
"...유, 윤...!"
지민이 안 그래도 잘 뜨이는 눈을 더 동그랗게 뜨며 자리를 박찼다. 벌떡 일어난 상체가 유리창을 향했다. 잘 닦아놓아 투명한 창문 너머에 다리를 걸치고 서 있는 사람은 지민이 너무나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유리를 넘어간 소량의 빛이 윤기의 얼굴을 보여주었다. 표정에 따뜻한 미소가 맺혀 있었다. 혹시나 찾아온 제 뜻을 모를까봐 또 유리창을 작게 똑똑 두드리는 정갈한 소매 위 손에 지민은 허둥지둥 이불을 걷고 창문을 열었다. 창문 너머 마당에 신발을 벗어두었는지 하얀 맨발이 창틀을 밟는다. 지민은 좁은 창에 불편하게 앉는 윤기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미안, 연락을 안 봐서 그냥 와버렸어. 잔잔하게 웃은 윤기가 몸을 앞으로 젖힌다. 어, 어, 선배...!
"으악!"
윤기가 잃은 중심은 지민의 위로 윤기와 함께 떨어졌다. 다행히 지민의 방 창문은 침대와 붙어 있었기에 지민의 등은 푹신한 침대와 만나 다치지 않았다. 물론 윤기가 깔고 누운 지민의 앞부분은 얼얼했지마는 지민은 별 개의치 않았다. 서둘러 얼굴을 들고 괜찮냐, 묻는 다정한 윤기가 좋아 괜찮다고 활짝 웃자, 윤기는 자신도 웃음을 섞으며 가볍게 입맞추곤 지민을 일으켰다. 혹여나 어둠이 우리를 봤다고 새어나가 떠들어댈까 윤기는 창문을 꼭 닫았다. 지민은 아직도 놀란 기색을 지우지 않았다.
"어, 어떻게 왔어요?"
"보고 싶어서 왔어. 엄마한테는 밤 산책 간다고 말하고 나왔지. 혹시 잘까봐 되게 걱정했는데 자는 모습이라도 보고 가려고 무턱대고 왔어. 안 자서 다행이네."
"저도 오늘따라 잠이 안 오더라고요. 선배 오는 거 기다리라고 잠이 일부러 오늘만 절 피했나봐요."
히히 웃는 지민은 서둘러 이불을 들추고 침대의 한 자리를 내어준다. 자, 선배 누워 있어요. 같이 자면 좋을텐데. 말했듯이 밤 산책 간다고 하고 나온 거라 금방 가야 돼. 나도 같이 있고 싶다. 머리를 괴고 서로 마주본 연인이 웃는다. 한 이불을 같이 덮고 있는 것이 지민은 괜히 설렜다. 언제나 자신에게 다정하기는 했지만 밤중에 자신을 보러 찾아온 윤기가 로맨틱하다, 고 지민은 그에게 한 번 더 반했다.
"이대로 시간 안 갔으면 좋겠어요."
"나도 그래. 내일 학교 가기 싫거든. 맨날 잘 거면 차라리 집에서 자는 게 낫지. 그리고 너랑 있는 게 두 배로 좋고."
"공부 좀 해요, 진짜. 근데 나도 선배랑 있는 게 두 배로 좋아요. 아니 나는 세 배, 네 배!"
"그럼 난 백 배?"
"무한!"
유치해, 우리 지민이. 지민의 코를 살짝 잡아당긴 윤기는 아파요, 하는 앙탈 섞인 목소리에 얼른 손을 놓았다. 본인이 티를 내지 않아도 행동에서 드러나는 자신에 대한 애정에 지민은 살짝 부끄러움에 앓아야 했다. 간간히 이어지던 의미 없는 대화를 끝으로 둘 사이에 여백이 생겼다. 고요한 밤의 침묵이 입술 사이까지 내려앉았다. 따스한 주황색 빛이 둘의 얼굴에 아른거렸다. 무언가 최면에 걸린 듯 윤기는 놀던 한쪽 손을 뻗었다. 홀린 듯 다가오는 윤기를 지민은 굳이 피하지 않았다. 적당한 분위기에 둘에게만 심어진 빛, 침묵 속에 잠든 모두들. 윤기는 천천히 입술 사이에 고여 있던 정적을 삼켰다. 원래부터 가까웠던 얼굴 사이 거리에 공간이 없어지자, 남는 것은 두 입술이었다.
둘의 사랑은 학교에서 꽃망울을 맺었다. 같은 방송부에서 만난 둘은 잘 모르는 나를 가르쳐주는 착한 선배, 나를 잘 따르는 착한 후배에서 자신들도 모르게 점차 서로에게 의미를 키워나갔다. 감정에 물을 주자 꽃피는 것은 두 송이의 사랑이었으니 서로 줄기를 얽고 살아가기 시작한 것은 불과 2개월 전이었다.
갓 입학한 녀석에게 빠져 미안하게도 꼬셔버렸다며 지민을 애지중지하는 윤기는 겨우 한 살 위 2학년이었다. 그래봤자 얼마 차이도 나지 않는 어린 나이들이었지만 연상 연하의 간극은 컸다. 어린 티를 벗을 수 없다 해도 연상인 윤기는 지민에게 어른처럼 굴어야만 했다. 둘의 집 사이가 가까웠어도 만남엔 항상 윤기는 지민의 집 앞에서 기다렸고, 연애에 지민의 의사를 좀 더 많이 들어주려고 노력하는 편이었다. 그나마 윤기는 또래에 비해 조숙한 편이라 관계를 리드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리 윤기가 어른스러워도 묘하게 다른 점은 여기저기 숨은 법이었다.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한 칸 부족한 제어력이라던지, 직설적인 대담함이라던지.
윤기는 망설이지 않고 지민의 입술마저도 집어삼켰다. 인간이 가진 비슷한 모양새의 두 곡선은 마치 처음부터 하나의 것이었다는 듯 꼭 맞물렸다. 바깥에 존재하지 못한 틈새는 안쪽 지민의 입술에 가득 사이를 벌려놓았다. 처음부터 다물 생각을 하지 못한 지민의 입 새로 윤기는 대담하게 혀를 꽂아넣었다. 자연스레 안으로 들어가는 살덩이에 지민은 긴장한 기색이었다. 윤기는 내심 안도한 참이었다. 싫어하며 꼭 다문 잇새를 굳이 비집고 들어가지 않아도 되어서. 이왕 허락도 받은 겸 윤기는 마음껏 노닐기로 했다. 비벼지는 온기 도는 입술이 숨을 가쁘게 했다. 입술이 미끄러지려는 참이면 윤기는 다시 맞대주었고 와중에도 혀는 제 할 일을 했다.
지민은 윤기가 평소에 자신을 소중히 대해주는 이유는 쌓여온 욕망을 한꺼번에 터뜨리기 때문이라 짐작했다. 제정신이 날아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듯 순서없이 핥아내는 입천장에 지민의 숨이 가쁘게 트였다. 윤기가 고개를 꺾자 지민의 고개도 비단 야릇하게 돌려졌다. 움직임 하나하나에 윤기는 따라붙었다. 잠시 혀를 뒤로 빼 입술로 입술을 열심히 빨다가도 능숙하게 혀를 넣어 돌린다. 쪽, 쪽 하는 외설적인 소리가 귀로 흘러들어가니 지민은 또 점차 흥분되는 것을 느꼈다. 어리다는 것은 느끼는 정도가 다른 것를 의미했다.
축축한 입안을 윤기는 고루 핥았다. 유연하고도 질긴 혀가 부드럽게 붉은 표피를 훑었다. 훑어올렸다 내렸다 하는 혀와 다르게 이불보를 움켜쥔 지민의 손을 안심시키듯 붙잡고 있던 윤기의 두 손은 한 쪽을 올려보냈다. 그것은 지민의 목덜미를 움켜쥐다 결국 뒤통수로 거주지를 바꿨다. 지민이 거친 테크닉에 벅차하며 물러나려고만 하면 윤기는 제 원하는 대로 지민의 머리통을 가져와 움직였다. 지민은 결국 눈이 풀린 채 힘겹게 윤기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격한 혀놀림에 입술 사이 빈 공간이 생기기만 하면 지민이 혀로 하는 정성스러운 애무에 못 이겨 조금씩 달뜬 신음을 흘려보냈다.
열심히 넓은 부분을 공략하면서 막상 중심을 건들지 않던 윤기는 지민이 으응, 하며 소리를 크게 터뜨리자마자 혀를 얽었다. 갑자기 당겨지는 혀에 지민이 당황할 틈도 없이 윤기는 살살 핥다가 혀를 감싸 빨아당겼다. 눈가와 같이 물기 어린 혀에서 희미하게 단내가 났다. 지민이 딸기향 치약 쓰나, 라는 생각으로 윤기가 피식 웃자 지민의 신음 소리가 또 새어나간다. 하으, 서배, 응... 뭐가 이렇게 키스를 잘해. 지민은 애타는 몸에 달린 머리에서 자그마한 질투를 한다. 이불보를 쥐던 손은 어느새 키스가 조금은 적응이 됐는지 윤기의 어깨에 걸쳐져 있었다. 윤기는 지민의 입안을 농락하는 것으로 끝을 낼 생각이 아니었는지 놀던 한쪽 손을 지민의 옷 속으로 살그머니 집어넣었다. 눈을 감고 키스에 집중하던 지민이 놀라 몸을 움찔한다. 윤기는 지민의 등판으로 손가락을 빼었다. 몸을 제대로 자극할 모양인지 긴 손가락이 척추선을 제대로 다시 그려넣는다. 찬찬히 쓸어올리는 손가락에 지민은 바르르 몸을 떨었다. 선을 그린 다음엔 점을 찍는다. 단단하게 척추를 누르는 손길에 열락이 돋아났다. 윤기는 총공격을 펼치듯 혀를 다시금 찔러 넣었다. 구석구석을 만져대는 혀와 함께 뜨거운 숨이 지민의 목으로 넘어가자, 지민은 희열에 떨었다. 가쁜 숨이 야릇하게 윤기에게 닿았다.
"흐으, 음... 하아, 으, 허윽."
윤기는 잘 반응하는 지민이 예뻐 죽을 지경이었다. 힘이 풀린 지민의 몸이 무너지자, 윤기는 마지막으로 입술을 모아 지민을 감싸고는 쪽, 하는 큰 소리와 함께 입을 떼었다. 헉, 헉 하며 가쁘게 숨을 몰아쉬는 지민의 앞에서 윤기는 잠시동안 이성을 찾는 시간을 가졌다. 침대에 늘어진 지민에 퍼뜩 정신이 든 윤기는 지민을 일으켜주며 다급히 물었다. 괜찮냐? 미안해, 내가 너무... 흥분했어. 흐으, 흐... 괜찮아요... 부모님 2층에 계셔서, 너무 크지 않는 이상 듣지도 못하고... 품에 곱게 안긴 지민이 살며시 웃었다. 윤기는 지민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주었다. 부서지는 숨결 사이에 선배, 선배 하며 자신을 찾는 지민에 윤기는 연신 맞추어 대답을 했다. 응, 지민아. 나 여기 있어. 어느 정도 진정된 듯 길게 숨을 내쉬며 눈을 맞춰오는 지민에 윤기는 순간 다시 입을 맞춰버릴 뻔한 위기를 넘겼다.
"선배 키스... 너무 잘해요."
"좋았어?"
"누구랑 연습했는지 질투 날 정도로요."
"... ..."
순간 할 말을 잃은 윤기를 본 지민이 소리내 웃는다. 괜찮아요, 선배가 지금 나 사랑하면 됐지. 밤중에 몰래 나 보러 올만큼 나 좋아하는 건데. 실실 웃는 지민에 그제서야 안심이 되어 따라 웃어주는 윤기였다.
"선배."
"응."
"무릎 베고 누워도 돼요?"
윤기는 티 나게 당황한다. 어... 글쎄. 안고 있으면 안 되나. 왜요? 아니 그냥... 허둥지둥하는 윤기가 우스워 지민은 또 한 차레 웃음을 터뜨린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선배, 안 숨겨도 돼요."
"어?"
"이미 안긴 순간부터 느껴졌는데?"
바짓단을 앙큼하게 가리키는 손짓. 윤기는 황급히 지민에게서 떨어져 티 나게 달뜬 중요부위를 가렸다. 지민은 또 깔깔댄다. 무안한 윤기는 지민에게 사과를 한다.
"야, 솔직히 네가 적당히 예뻤어야지. 키스도 반응이 좋아야 덩달아 같이 좋고 그러는 거야."
"네네, 이해해요. 키스는 섹스의 축소판이라니까."
"너 그런 위험한 말은 어디서 배웠냐."
"오늘 이해가 가서요. 저 키스만으로 갈 뻔했다니까요."
"뭐? 박지민 이게, 꼬시려고 작정을 하네."
"형도 섰지만요,"
전 지금 금방이라도 갈 것 같거든요. 지민이 배시시 웃자 넋이 나갈 뻔한 윤기는 냉큼 지민을 붙잡는다. 어느새 지민을 덮쳐 아래에 놓은 윤기는 마지막 남은 이성을 내밀었다.
"그러고 보니 나 빨리 가야 되는데."
"그러게, 저도 빨리 자야 해요. 근데 있잖아..."
그만두기엔 너무 하고 싶어. 솔직한 지민에게 윤기는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이성이 끊어지는 소리가 들릴 때 지민은 마지막 말을 남겼다. 나 지금 죽을 각오 하고 이러는 거예요. 그리고 지민은 먼저 입술을 겹쳤다. 그냥 자기엔, 가기엔 너무 아까운 밤이었다.
W.비앙카
유난히 잠이 오지 않더라니, 그것은 오실 임을 기다리라는 몸의 신호였구나.
지민은 침대에 누워 이불을 끌어당겼다. 머리칼이 베개 위로 흐뜨러졌다. 은은한 무드등의 주황빛이 방 안을 얕게 비춘다. 시곗바늘이 12시를 가리키고 있었기에 지민은 잠을 청했다. 야속하게도 눈동자는 잠귀신이 찾아오지 않은 듯 말똥말똥 뜨여 있었다. 밖에서 맴맴, 하는 작은 매미소리가 고요한 밤공기 사이로 스며들었다. 지민은 자리에서 뒤척였다. 부스럭거리며 천이 지민의 사이에서 구겨졌다.
"지금 안 자면 내일 학교에서 조는데..."
그리고 찾아온 선배한테 인사 못할 수도 있고... 지민은 눈을 꼭 감고 잠시동안 어디론가 흘러간 잠을 찾았다. 잠아, 잠아 와라. 물론 노력은 허사였다는 듯 트이는 눈꺼풀이 밉다. 침대 옆 창문에 어둠이 짙게 깔렸는데, 내 잠은 어디를 헤매기에 날 찾지 않는 걸까. 지민은 가만히 눈을 깜빡였다. 자야 하는데.
"...유, 윤...!"
지민이 안 그래도 잘 뜨이는 눈을 더 동그랗게 뜨며 자리를 박찼다. 벌떡 일어난 상체가 유리창을 향했다. 잘 닦아놓아 투명한 창문 너머에 다리를 걸치고 서 있는 사람은 지민이 너무나도 잘 아는 사람이었다. 유리를 넘어간 소량의 빛이 윤기의 얼굴을 보여주었다. 표정에 따뜻한 미소가 맺혀 있었다. 혹시나 찾아온 제 뜻을 모를까봐 또 유리창을 작게 똑똑 두드리는 정갈한 소매 위 손에 지민은 허둥지둥 이불을 걷고 창문을 열었다. 창문 너머 마당에 신발을 벗어두었는지 하얀 맨발이 창틀을 밟는다. 지민은 좁은 창에 불편하게 앉는 윤기를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미안, 연락을 안 봐서 그냥 와버렸어. 잔잔하게 웃은 윤기가 몸을 앞으로 젖힌다. 어, 어, 선배...!
"으악!"
윤기가 잃은 중심은 지민의 위로 윤기와 함께 떨어졌다. 다행히 지민의 방 창문은 침대와 붙어 있었기에 지민의 등은 푹신한 침대와 만나 다치지 않았다. 물론 윤기가 깔고 누운 지민의 앞부분은 얼얼했지마는 지민은 별 개의치 않았다. 서둘러 얼굴을 들고 괜찮냐, 묻는 다정한 윤기가 좋아 괜찮다고 활짝 웃자, 윤기는 자신도 웃음을 섞으며 가볍게 입맞추곤 지민을 일으켰다. 혹여나 어둠이 우리를 봤다고 새어나가 떠들어댈까 윤기는 창문을 꼭 닫았다. 지민은 아직도 놀란 기색을 지우지 않았다.
"어, 어떻게 왔어요?"
"보고 싶어서 왔어. 엄마한테는 밤 산책 간다고 말하고 나왔지. 혹시 잘까봐 되게 걱정했는데 자는 모습이라도 보고 가려고 무턱대고 왔어. 안 자서 다행이네."
"저도 오늘따라 잠이 안 오더라고요. 선배 오는 거 기다리라고 잠이 일부러 오늘만 절 피했나봐요."
히히 웃는 지민은 서둘러 이불을 들추고 침대의 한 자리를 내어준다. 자, 선배 누워 있어요. 같이 자면 좋을텐데. 말했듯이 밤 산책 간다고 하고 나온 거라 금방 가야 돼. 나도 같이 있고 싶다. 머리를 괴고 서로 마주본 연인이 웃는다. 한 이불을 같이 덮고 있는 것이 지민은 괜히 설렜다. 언제나 자신에게 다정하기는 했지만 밤중에 자신을 보러 찾아온 윤기가 로맨틱하다, 고 지민은 그에게 한 번 더 반했다.
"이대로 시간 안 갔으면 좋겠어요."
"나도 그래. 내일 학교 가기 싫거든. 맨날 잘 거면 차라리 집에서 자는 게 낫지. 그리고 너랑 있는 게 두 배로 좋고."
"공부 좀 해요, 진짜. 근데 나도 선배랑 있는 게 두 배로 좋아요. 아니 나는 세 배, 네 배!"
"그럼 난 백 배?"
"무한!"
유치해, 우리 지민이. 지민의 코를 살짝 잡아당긴 윤기는 아파요, 하는 앙탈 섞인 목소리에 얼른 손을 놓았다. 본인이 티를 내지 않아도 행동에서 드러나는 자신에 대한 애정에 지민은 살짝 부끄러움에 앓아야 했다. 간간히 이어지던 의미 없는 대화를 끝으로 둘 사이에 여백이 생겼다. 고요한 밤의 침묵이 입술 사이까지 내려앉았다. 따스한 주황색 빛이 둘의 얼굴에 아른거렸다. 무언가 최면에 걸린 듯 윤기는 놀던 한쪽 손을 뻗었다. 홀린 듯 다가오는 윤기를 지민은 굳이 피하지 않았다. 적당한 분위기에 둘에게만 심어진 빛, 침묵 속에 잠든 모두들. 윤기는 천천히 입술 사이에 고여 있던 정적을 삼켰다. 원래부터 가까웠던 얼굴 사이 거리에 공간이 없어지자, 남는 것은 두 입술이었다.
둘의 사랑은 학교에서 꽃망울을 맺었다. 같은 방송부에서 만난 둘은 잘 모르는 나를 가르쳐주는 착한 선배, 나를 잘 따르는 착한 후배에서 자신들도 모르게 점차 서로에게 의미를 키워나갔다. 감정에 물을 주자 꽃피는 것은 두 송이의 사랑이었으니 서로 줄기를 얽고 살아가기 시작한 것은 불과 2개월 전이었다.
갓 입학한 녀석에게 빠져 미안하게도 꼬셔버렸다며 지민을 애지중지하는 윤기는 겨우 한 살 위 2학년이었다. 그래봤자 얼마 차이도 나지 않는 어린 나이들이었지만 연상 연하의 간극은 컸다. 어린 티를 벗을 수 없다 해도 연상인 윤기는 지민에게 어른처럼 굴어야만 했다. 둘의 집 사이가 가까웠어도 만남엔 항상 윤기는 지민의 집 앞에서 기다렸고, 연애에 지민의 의사를 좀 더 많이 들어주려고 노력하는 편이었다. 그나마 윤기는 또래에 비해 조숙한 편이라 관계를 리드하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그러나 아무리 윤기가 어른스러워도 묘하게 다른 점은 여기저기 숨은 법이었다. 대표적인 예를 들자면, 한 칸 부족한 제어력이라던지, 직설적인 대담함이라던지.
윤기는 망설이지 않고 지민의 입술마저도 집어삼켰다. 인간이 가진 비슷한 모양새의 두 곡선은 마치 처음부터 하나의 것이었다는 듯 꼭 맞물렸다. 바깥에 존재하지 못한 틈새는 안쪽 지민의 입술에 가득 사이를 벌려놓았다. 처음부터 다물 생각을 하지 못한 지민의 입 새로 윤기는 대담하게 혀를 꽂아넣었다. 자연스레 안으로 들어가는 살덩이에 지민은 긴장한 기색이었다. 윤기는 내심 안도한 참이었다. 싫어하며 꼭 다문 잇새를 굳이 비집고 들어가지 않아도 되어서. 이왕 허락도 받은 겸 윤기는 마음껏 노닐기로 했다. 비벼지는 온기 도는 입술이 숨을 가쁘게 했다. 입술이 미끄러지려는 참이면 윤기는 다시 맞대주었고 와중에도 혀는 제 할 일을 했다.
지민은 윤기가 평소에 자신을 소중히 대해주는 이유는 쌓여온 욕망을 한꺼번에 터뜨리기 때문이라 짐작했다. 제정신이 날아가고 있다는 것을 증명하듯 순서없이 핥아내는 입천장에 지민의 숨이 가쁘게 트였다. 윤기가 고개를 꺾자 지민의 고개도 비단 야릇하게 돌려졌다. 움직임 하나하나에 윤기는 따라붙었다. 잠시 혀를 뒤로 빼 입술로 입술을 열심히 빨다가도 능숙하게 혀를 넣어 돌린다. 쪽, 쪽 하는 외설적인 소리가 귀로 흘러들어가니 지민은 또 점차 흥분되는 것을 느꼈다. 어리다는 것은 느끼는 정도가 다른 것를 의미했다.
축축한 입안을 윤기는 고루 핥았다. 유연하고도 질긴 혀가 부드럽게 붉은 표피를 훑었다. 훑어올렸다 내렸다 하는 혀와 다르게 이불보를 움켜쥔 지민의 손을 안심시키듯 붙잡고 있던 윤기의 두 손은 한 쪽을 올려보냈다. 그것은 지민의 목덜미를 움켜쥐다 결국 뒤통수로 거주지를 바꿨다. 지민이 거친 테크닉에 벅차하며 물러나려고만 하면 윤기는 제 원하는 대로 지민의 머리통을 가져와 움직였다. 지민은 결국 눈이 풀린 채 힘겹게 윤기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
격한 혀놀림에 입술 사이 빈 공간이 생기기만 하면 지민이 혀로 하는 정성스러운 애무에 못 이겨 조금씩 달뜬 신음을 흘려보냈다.
열심히 넓은 부분을 공략하면서 막상 중심을 건들지 않던 윤기는 지민이 으응, 하며 소리를 크게 터뜨리자마자 혀를 얽었다. 갑자기 당겨지는 혀에 지민이 당황할 틈도 없이 윤기는 살살 핥다가 혀를 감싸 빨아당겼다. 눈가와 같이 물기 어린 혀에서 희미하게 단내가 났다. 지민이 딸기향 치약 쓰나, 라는 생각으로 윤기가 피식 웃자 지민의 신음 소리가 또 새어나간다. 하으, 서배, 응... 뭐가 이렇게 키스를 잘해. 지민은 애타는 몸에 달린 머리에서 자그마한 질투를 한다. 이불보를 쥐던 손은 어느새 키스가 조금은 적응이 됐는지 윤기의 어깨에 걸쳐져 있었다. 윤기는 지민의 입안을 농락하는 것으로 끝을 낼 생각이 아니었는지 놀던 한쪽 손을 지민의 옷 속으로 살그머니 집어넣었다. 눈을 감고 키스에 집중하던 지민이 놀라 몸을 움찔한다. 윤기는 지민의 등판으로 손가락을 빼었다. 몸을 제대로 자극할 모양인지 긴 손가락이 척추선을 제대로 다시 그려넣는다. 찬찬히 쓸어올리는 손가락에 지민은 바르르 몸을 떨었다. 선을 그린 다음엔 점을 찍는다. 단단하게 척추를 누르는 손길에 열락이 돋아났다. 윤기는 총공격을 펼치듯 혀를 다시금 찔러 넣었다. 구석구석을 만져대는 혀와 함께 뜨거운 숨이 지민의 목으로 넘어가자, 지민은 희열에 떨었다. 가쁜 숨이 야릇하게 윤기에게 닿았다.
"흐으, 음... 하아, 으, 허윽."
윤기는 잘 반응하는 지민이 예뻐 죽을 지경이었다. 힘이 풀린 지민의 몸이 무너지자, 윤기는 마지막으로 입술을 모아 지민을 감싸고는 쪽, 하는 큰 소리와 함께 입을 떼었다. 헉, 헉 하며 가쁘게 숨을 몰아쉬는 지민의 앞에서 윤기는 잠시동안 이성을 찾는 시간을 가졌다. 침대에 늘어진 지민에 퍼뜩 정신이 든 윤기는 지민을 일으켜주며 다급히 물었다. 괜찮냐? 미안해, 내가 너무... 흥분했어. 흐으, 흐... 괜찮아요... 부모님 2층에 계셔서, 너무 크지 않는 이상 듣지도 못하고... 품에 곱게 안긴 지민이 살며시 웃었다. 윤기는 지민의 머리카락을 쓸어 넘겨주었다. 부서지는 숨결 사이에 선배, 선배 하며 자신을 찾는 지민에 윤기는 연신 맞추어 대답을 했다. 응, 지민아. 나 여기 있어. 어느 정도 진정된 듯 길게 숨을 내쉬며 눈을 맞춰오는 지민에 윤기는 순간 다시 입을 맞춰버릴 뻔한 위기를 넘겼다.
"선배 키스... 너무 잘해요."
"좋았어?"
"누구랑 연습했는지 질투 날 정도로요."
"... ..."
순간 할 말을 잃은 윤기를 본 지민이 소리내 웃는다. 괜찮아요, 선배가 지금 나 사랑하면 됐지. 밤중에 몰래 나 보러 올만큼 나 좋아하는 건데. 실실 웃는 지민에 그제서야 안심이 되어 따라 웃어주는 윤기였다.
"선배."
"응."
"무릎 베고 누워도 돼요?"
윤기는 티 나게 당황한다. 어... 글쎄. 안고 있으면 안 되나. 왜요? 아니 그냥... 허둥지둥하는 윤기가 우스워 지민은 또 한 차레 웃음을 터뜨린다. 내가 이럴 줄 알았어.
"선배, 안 숨겨도 돼요."
"어?"
"이미 안긴 순간부터 느껴졌는데?"
바짓단을 앙큼하게 가리키는 손짓. 윤기는 황급히 지민에게서 떨어져 티 나게 달뜬 중요부위를 가렸다. 지민은 또 깔깔댄다. 무안한 윤기는 지민에게 사과를 한다.
"야, 솔직히 네가 적당히 예뻤어야지. 키스도 반응이 좋아야 덩달아 같이 좋고 그러는 거야."
"네네, 이해해요. 키스는 섹스의 축소판이라니까."
"너 그런 위험한 말은 어디서 배웠냐."
"오늘 이해가 가서요. 저 키스만으로 갈 뻔했다니까요."
"뭐? 박지민 이게, 꼬시려고 작정을 하네."
"형도 섰지만요,"
전 지금 금방이라도 갈 것 같거든요. 지민이 배시시 웃자 넋이 나갈 뻔한 윤기는 냉큼 지민을 붙잡는다. 어느새 지민을 덮쳐 아래에 놓은 윤기는 마지막 남은 이성을 내밀었다.
"그러고 보니 나 빨리 가야 되는데."
"그러게, 저도 빨리 자야 해요. 근데 있잖아..."
그만두기엔 너무 하고 싶어. 솔직한 지민에게 윤기는 한 대 맞은 기분이었다. 이성이 끊어지는 소리가 들릴 때 지민은 마지막 말을 남겼다. 나 지금 죽을 각오 하고 이러는 거예요. 그리고 지민은 먼저 입술을 겹쳤다. 그냥 자기엔, 가기엔 너무 아까운 밤이었다.